역사 속의 한국 여성 1: 삼국/고려시대의 여성(三國/高麗時代의 女性) (歴史の中の韓国の女性 1 - 三國/高麗時代の女性) (201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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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도쿄도 다마시에 있는 한국어 교실 한교실의 팟캐스트 코너예요. 오늘부터는 한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중심으로 해서 시리즈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여성의 지위나 활동 범위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여성의 역할이 컸고, 활동의 제한도 없던 남녀평등의 사회였던 삼국/고려시대, 유교사상에 근거를 둔 남존여비(男尊女卑)로 여성의 활동이 제한되었던 조선시대로 구분해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남녀평등 시대였던 삼국/고려시대의 여성들에 대해서 입니다.

여러분은 ‘주몽’이라는 한국 드라마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물의 신(水の神)의 딸로 농업의 신(農業の神)이었습니다. 그리고 선덕여왕, 진덕여왕 등 한국 역사상 여왕이 있었던 것은 삼국시대의 신라뿐이에요. 이와 같이 삼국시대에는 남녀평등의 사회로 여성이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높은 관직에까지 올라 갈 수 있었어요. 실례(実例)로 초기의 화랑(花郞)은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그 대표도 여성이었습니다. 결혼 풍습도 데릴사위제가 성행,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일정 기간 거주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이때 신랑이 신부 집에 갈 때 돈과 폐백을 가지고 갔던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요, 바로‘함들이’예요.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지만 아직 유교 사상이 본격적으로 확산 되기 전이라 사회적으로는 남성과 평등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집안 행사나 유산 배분에서도 아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어요. 결혼식은 신부 집에서 올렸으며 결혼하고 한동안은 장인, 장모를 모시며 신부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었을 때는 재혼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녀가 평등했던 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여성이 사회적 활동을 못하게 되고, 여성에게는 ‘순종’을 강요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여성의 이야기는 다음 회에 보내드리겠습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현재, 한교실의 다마센타역(多摩センター駅)학원에서는 3월부터 시작되는 한국어 초급반의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매주 목요일 6시 45분부터 이고요,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휴대폰 사이트를 참고로 하세요. 그럼, 다음 회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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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分けてみることができますが - 나누다(分ける) + ~어 보다(~してみる) + ~(으)ㄹ 수 있다(~することができる) + ~는 데요(~ますが)
・역할이 컸고: 役割が多くて - 역할이 크다 (役割が大きい) + 컸다(‘크다’大きいの過去形) + ~고(~して、事実を並べる時用いる語尾)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何の制限も受けずに - 받다(受ける) + ~지 않다(~しない) + ~고(~して)
・올라갈 수 있었어요: 上がることができました - 올라가다(上がっていく) + ~ㄹ 수 있다(~することができる)
・데릴사위제가 성행: 婿入り結婚が流行り
・가지고 갔던: 持っていった - 가지다(持つ) + ~고(~して) +가다(行く) + 았던(過去を表わす語尾)
・한동안은 장인, 장모를 모시며: しばらくは(妻の)お父さん、お母さんに仕えながら
・제공했다고 합니다/살았다고 합니다/가능했다고 합니다: 提供したそうです/暮らしたそうです/可能だったそうです - ~었/았/했다 + 고 해요(~だそう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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